2025. 2. 2. 16:52ㆍ공간디자인론
공간과 인지에 대한 관점의 변화(2)
동서양 인식론의 관점에 따른 변화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어 있는 것'을 뜻하는 '공'과 '무엇과 무엇의 사이'를 뜻하는 '간'이라는 음절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어 자체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곳' 또는 '무엇과 무엇의 사이'로 풀이되며, 이는 '비어 있음'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양적 인식론과 연관성을 가진다.
동양의 인식에서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고, 시간과 밀접히 결부되어 상통하는 일원론적 이원으로 인식한다. 또한 인간과 공간 및 사물을 상대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감정이 내부로부터 부여될 때 공간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반해 서양적 인식론에서는 공간은 사물을 통하여 의미를 갖고, 사물과 사물 사이나 사물의 주변으로 인식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과 별개의 대상으로 공간을 파악하며, 공간관 역시 자연의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학문의 관점에 따른 차이
공간의 개념은 사회적 사상과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정립되어 왔기 때문에 자연과학 및 철학 분야 등의 학문에서 연구된 공간 관도 함께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심리적 작용과 지각 반응을 중심으로 공간을 이해하고, 철학에서 공간좌표 상에서 일어난 인간의 경험적 공간과 특별 요소에 의해 성격이 부여된 선험적 공간의 합으로 공간을 이해한다.
물리학에서는 통일장이론의 연구에 여러 개의 접속 공간을 도입하여 공간을 이해하고 있으며, 현대 수학에서는 일반적 집합을 공간으로 정의하고 원소를 점으로 하는 추상적 공간의 대상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기하학에서는 개념적으로 접근했던 무한공간의 개념에 질서를 부여하였으며 기하학의 역사와 함께 변모된 기하학적 공간개념은 철학과 함께 공간인식 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공간의 실체적 존재를 부인했다. 플라톤은 공간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기하학을 도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소 이론을 펼쳤는데, 공간이란 모든 장소를 포함하며 방향성의 개념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정립은 공간을 실용적으로 체계화하였고, 고대 세계관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뉴턴은 17세기, 데카르트가 도입한 직교좌표체계에 의하여 물리적이고 수리적인 개념으로 공간에 대한 풀이를 시도하였고 마침내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공간개념을 형성하였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절대적인 것으로, 질적 차이나 변화 없이 동일하며 무한 확장 및 축소가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훌륭하고 완벽하여 당시는 물론이고 2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결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19세기 유클리드 기하학에 비해 물리적 개념의 공간을 더욱 명확한 근거로 상대적 공간개념을 제시한 비 유클리드 기하학과 공간에 대한 이론을 3차원에서 4차원적 시공의 개념으로 확장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제시되면서 오랫동안 부동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던 공간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통해 이전 기하학의 공리로는 어려웠던 자연현상이나 천체 운행의 설명이 가능해졌으며 세계관과 우주관, 그리고 공간 인식에 대한 변화도 가져왔다. 즉, 공간은 절대적 하나가 아니고, 서로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인류는 공간에 대한 물리적, 수학적 인식의 세계를 얻었으나 실생활에서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성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현상적 공간에서 인간은 공간을 그 자체로 지각하기보다는 공간을 채우는 빛과 같은 물리적 매개체, 또는 공간 안에 자리 잡은 사물의 네거티브로서 감지하게 되었고 인간에게 지각적 영향을 발생시키는 이러한 물리적 매개체 간의 상관관계를 공간을 인식하는 틀의 시작 요소로 받아들였다.
즉, 공간은 개별적 요소가 아닌 주변 대상물과의 상호관계성 및 작용에 따라 크기와 방향 및 밀도 등을 가진 '총체적 무엇'으로 인지한 것이다. 또한, 다양한 양상의 인간 행태를 기본으로 이러한 여러 매개의 총체 가운데 인간이 놓인 상황과 지각 범위에 따라 다양한 개별적 공간인식의 소유를 강조하였다.
공간의 특성
중심과 장소
인간은 공간 내에서 물리적인 매개체와 상관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공간지각을 자발적으로 발생시키며 그 중심에서 공간을 전개한다.
본래 인간은 기본적 욕구에 따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세계를 중심화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 공간 속에서 위치를 획득하는 점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그곳을 인간의 특별한 활동이 수행되는 곳, 사회적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곳이 '장소'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은 추상적 개념인 '공간'보다 구체적인 개념의 '장소'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단계를 생리적 욕구, 안정성, 소속감과 사랑, 존중, 자아실현 순으로 정하였다. 연구는 자신이 중심이 된 어떠한 장소에서 얻을 수 있는 정체성, 개체성, 중심성의 확보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장소가 인간 행위를 통해 의미를 가지고 발생하는 결과물인 동시에 인간이 장소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환경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방향과 통로
공간이 장소로 변환될 때 그 장소는 '방향성'을 가지며, 이러한 방향성은 어떠한 공간에 '장소' 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방향의 개념을 가지고 이동성이 생길 때에 공간과 공간 사이, 장소와 장소 사이에는 통로가 발생하며, 이는 기존의 공간과 공간 사이, 장소와 장소 사이의 관계성을 만들거나 제삼의 장소를 재발생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장소와 방향성과 통로는 상호 연쇄적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구역과 영역
인간은 통로를 통해 방향성을 가지고 이동하며 이동의 결과, 비교적 익숙하거나 그렇지 않은 여러 구역에 이르도록 한다. 개인이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떠한 목표로서의 의미도 가지지 않는 공간을 구역이라 하며, 이에 반해 어떠한 특질을 가지고 내부의 매개체 간의 성질 및 요소 간의 결합을 통해 인간이 어떠한 행태를 보이거나 그러한 인간행태를 유발할 수 있는 특성을 갖는 공간을 영역이라 한다.
영역은 그 내부적 요소에 의해 특성이 규정될 수 있으나 어떤 경우에는 배경에 의해 특성이 더욱 명확히 정의되기도 한다. 동서남북과 같이 방위에 의해 특정 영역이 규정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